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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딸아이가 6세가 된 기념으로 같이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작인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았습니다.

보면서 스스로도 너무나 놀랐던 게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이렇게 좋은 작품이었던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미야자키하야오라는 거장의 일본 감독은 워낙 만드는 애니메이션마다 던지는 메시지들이 무거워 한번 시작하게 되면 무섭게 빠져들기는 하지만 막상 그의 작품을 선택하는 기로에서는 볼까 말까라는 개인적으로 상당한 고민에 빠지게 하여 애써 외면하는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10년이 훌쩍 넘어 다시 보게 된 작품이었지만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여전히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뭐 아이와 같이 생활하고 아이의 눈으로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옛날보다는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좀 더 쉽고 단순하게 남의 동네 가서 먹은 음식 때문에 동네 사람을 화나게 해 아빠 엄마가 돼지로 변하게 되고 그로 인해 딸아이(센과치히로) 가 엄마 아빠를 구해내는 내용으로만 볼 수도 있어 사실 감회가 새롭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그 옛날 처음 개봉했을 때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라는 자본주의의 차가운 단면부터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과 이름이 갖는 무게 그리고 이름과 나라는 존재의 유기적 연결 고리, 점점 더 클라이맥스로 치달아 가는 자연파괴와 인간이 내포하고 있는 부정적 모습들과 편견, 현대사회의 이중적 면모 등 볼수록 불편한 진실에 나름 힘들었던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오늘날 다시 본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저 단순하고 쉽게 볼 수 있는 판타지 애니메이션에 가까웠습니다.

 

도시에서 보통의 여자아이로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았음을 내포하며 센과치히로와 엄마, 아빠가 시골로 이사 오는 장면부터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시작하게 됩니다. 일본의 시골 풍경을 한눈으로 알 수 있도록 자동차가 달려 나가며 보여주는 연출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만이 보여주는 특징이 아닐까 싶은 명장면 중 하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센과치히로는 시골로 이사 오게 된 게 불만인 듯 엄마 아빠에게 귀여운 투정을 부리게 되고 길을 잘못 든 것인지 운전을 하던 아빠는 어느 터널 앞에서 차를 멈추고 내리게 됩니다.

홀린 듯 터널을 지나 어느 유원지로 보이는 평야로 나온 엄마, 아빠 그리고 그런 엄마 아빠를 뭔가 불길한 듯 조심스레 걱정하며 뒤쫓아 가는 센과치히로. 엄마 아빠는 버려진 유원지로 보이는 곳에서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자신들도 모르게 음식을 허겁지겁 먹게 되고 센과치히로는 엄마와 아빠에게 주인이 와서 화내면 어쩌냐고 하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엄마 아빠에게 단념하고 혼자서 먼저 동네를 탐험하게 됩니다. 

그러다 어떤 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그 소년은 센과치히로를 걱정하며 어두워지기 전에 여기를 어서 빠져나 가라고 합니다. 당황한 센과치히로는 정신없이 달리다 음식을 먹고 있던 엄마 아빠가 떠오르게 되고 허겁지겁 엄마 아빠가 있던 자리에 가보지만 거기에는 엄마아빠 대신 웬 돼지 두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놀라고 당황한 센과치히로는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가 보지만 어느덧 그 길에는 강물이 차 올라와 있고 화려한 배가 강가에 도착하고 생전 본 적도 없는 기괴한 생물체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걸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일은 점점 자신의 모습이 희미해져 가며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놀랍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절망에 빠져 우는 센과치히로 앞에 아까 어서 돌아가라고 소리치던 소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열매 하나를 건네는데 이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고 하지요. 어쩔 수 없이 그 열매를 삼키자 사라지던 센과치히로의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고 자신을 이미 두 번 구해준 그 소년을 센과치히로는 의지하게 됩니다.

 

이 세계는 사실 신들이 휴식을 취할 겸 먹고 쉬고 씻기 위해 들리는 온천장이 있는 곳인데 이 세계의 신이라 할 수 있는 유바바라는 여자의 밑에서 누구나 계약을 하고 일을 해야 동물로 변하지 않고 먹고살아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센과치히로를 두 번이나 구해준 그 소년은 하쿠라는 소년으로 그런 유바바의 제자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평판 나쁜 소년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런 평판과는 달리 하쿠는 왠지 모르게 센과치히로를 구해준 거고 이 세계에서 동물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 일단 가마 할아범을 찾아가라고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결국 가마 할아범을 찾아가 혼자 유바바와 근로 계약까지 성공 해 내고 마는 센과치히로. 

센과히치로는 하쿠의 도움으로 엄마 아빠가 갇혀있는 돼지우리에 가서 돼지로 변한 엄마 아빠를 보게 되지만 누가 엄마 아빠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듬을 느끼게 되고 두려움에 울고 막막함에 떨게 됩니다. 그리고 하쿠는 그런 센과치히로를 위로해주며 절대 치히로라는 이름을 잊지 말라는 조언을 해줍니다. 

유바바와의 계약으로 인해 온천에서 일하게 된 센과치히로는 오물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강의 신을 구해줘 쓴 당고를 선물로 받게 되는데 이것이 나중에 목숨이 위험해진 하쿠를 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쿠는 사실 센과치히로가 도시에 살 때 그 동네에 있던 강에 살던 용신이었는데 어느 날 강을 모두 막고 건물이 들어오게 되면서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되면서 유바바가 있는 세계로 건너와 유바바에게 마법을 배우는 조건으로 제자로 들어오고 유바바의 앞잡이를 하며 온갖 나쁜 짓도 하게 된 거였습니다. 

그런데 하쿠가 강의 용신으로 있을 때 어렸던 센과치히로가 동네에서 강에 빠져 목숨이 위험했을 때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센과치히로는 그걸 기억해 내게 되고 자신의 이름을 잊게 되어 유바바의 저주에서 풀려날 수 없었던 하쿠에게 이름을 기억해 내게 하고 맙니다. 

 

결국 유바바가 준 임무들을 완수하고 역경들을 이겨내면서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은 센과치히로는 부모님을 저주로부터 풀려나게 하고 이 세계에서 떠날 수 있게 됩니다. 하쿠와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며 절대 뒤돌아봐서는 안된다는 하쿠의 말을 되새기며 다시 평야로 나가자 사람으로 변한 엄마 아빠가 치히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막을 내리는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습니다. 여운을 남기던 하쿠의 뒷모습이 둘의 이별이 뭔지 모르게 마음을 찡하게 했지만 세상에 꼭 남녀 간의 해피엔딩만이 전부가 아니듯 약 2시간가량 빠져들어 봤던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아이와 충분히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던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이등신으로 등장하는 기괴하게 생긴 유바바나 유바바의 아들, 가마 할아범이나 온천을 하러 들리는 일본의 신의 모습들은 기괴하고 해괴하여 판타지적 요소를 더 가미해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같이 보다 보니 조금 징그럽기도 하고 조금 잔인한가 싶기도 한 장면들이 오히려 그럴 수 있을만한 어떤 또 다들 세계를 그려내는 듯하여 아이에게 보여주기 꺼려지는 부분은 아니었다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노노케히노라던가 붉은돼지 같은 애니메이션은 무리겠지만 말입니다. 

많은 메시지를 사실 던지는 작품임에는 분명하지만 일일이 부여하는 의미에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단순하게 아이와 같이 보다 보니 좀 더 즐겁고 재미있게 여행 한 작품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십여 년이 훌쩍 넘어서 본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렇게 좀 더 쉽게 저에게 다가온 작품이라 더 반가웠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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